대한민국 코미디계의 살아있는 원로대부인 전유성은 서라벌예대 졸업 후 정극 배우를 지망했습니다. 여러 번 실패하고 당시 최고에 관심을 누렸던 MC 겸 코메디언인 "후라이보이" 곽규석의 방영이나 공연용 원고를 써주는 일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고 합니다. 개그맨이라는 단어를 창시한 첫의 개그맨입니다.
전유성은 연예계와 그 외 분야에선 여러가지 일을 했지만 연예인의 관심 지표라고 할 수 있는 텔레비전에선의 활약은 별로 없습니다. 즉 TV에 주연급으로 나온 적이 없습니다는 이야기.[2009년 여름 ~ 가을엔 후루룩국수 광고 덕분에 그래도 많이 나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TV에 나오는 걸 꺼려하기도 하였고 또한 말보다는 글로 웃기는 데 더욱 재주가 있기 때문... 이지만 그래도 라디오에는 꾸준히 출현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개그맨 전성시절 김형곤 심형래 이경규 이봉원 임하룡 최양락 김미화 등 그야말로 전국구 스타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때라 상대적으로 안 웃긴 것으로 기억하는 분들도 있기도 하고
한편 1991년 내일은 챔피언을 통하여 영화감독에 첫작품했습니다. 흥행에 실패하자 비디오용 어린이영화로 발길을 돌렸네요.
가장 얼마전 TV에 출현한 것은 개그콘서트 초창기 때 "전유성의 개그클리닉"이라는 코너를 만들었던 것이었지만 이것 또한 얼마 못 가서 끝났습니다.
그 이유는 전유성이 "슬로우 개그"를 구사하기 때문에 한번쯤은 더 생각해 봐야 이해되고 웃긴데 TV방영이라면 진행이 워낙 빠르니 그런 생각을 할 시간 자체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인 듯합니다.
전유성이 한 일 중 유명한 것을 말하자면 "개그맨"이라는 단어를 첫로 만든 인물입니다. 최양락이 TV프로에 나와서 "전유성씨가 개그맨이라는 단어를 만들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대학 시절에 배운 연극용어 "개그"에선 차용해 자신을 개그맨이라고 자칭하면서부터 알려졌습니다. PC통신 시절에도 아이디가 gagman1이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코메디와 코메디언이라는 정확한 단어 대신에 개그와 개그맨이라는 잘못된 콩글리쉬가 사용되고 있습니다고 지적을 받습니다.
성함 | 전유성[全裕成] |
출생 | 1949년 1월28일 [70세]- 서울 |
거주지 | 전라북도 남원시 |
키,몸무게,혈액형 | 182cm-75kg-O형 |
첫작품 | 1969년 -MBC방송작가 |
출신학교 | 서라벌고등학교 졸업 |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연출과 | |
회사(소속사) | 랄랄라온 |
취미 | 독서-스키 |
종교사항 | 불교 |
그리고 지금 보면 굉장히 선구자적인 비즈니스들을 많이 고안해냈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심야 볼링장과 심야 극장이 있습니다. 1999년 나온 책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습니다"만 봐도 "신선한 공기를 캔에 담아 팔기" "생일 신문" "읽던 책 산골 아이들에겐 기증하기" "가로수 분양" "요리 시설/재료를 제공하는 가게" 등 지금은 일상이 된 아이디어들이 많습니다. 광고 카피라이터로도 약간 성함을 날려서 "하늘에선 콜라병 하나가 떨어지며 영화가 시작됩니다"라는 영화 "부시맨"의 카피를 쓰기도 했습니다. 또한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연예계에선 오래 전부터 친분이 있는 SM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이수만의 "컴퓨터를 모르면 안되는 세상이 옵니다"라는 조언을 시초로 컴퓨터에 심취해 쓴 저서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합니다"는 정보통신부에선 상까지 받았습니다. 책의 서술에 따르면 "초보자용이랍시고 나온 책들 중에 정말 쉬운게 하나도 없어서" 직접 썼다고. 이렇듯 일반에는 개그보다 다른 업적으로 더 유명한 인물이고 아이디어맨으로 기억됩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개그 쪽으로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많은 아이디어로 후배 개그맨들의 개그에 조언을 많이 해주었습니다고. 말하자면 개그계의 아이디어 뱅크. "아이디어가 막히면 전유성 선배를 찾아가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았습니다나 뭐라나. 1980년대 후반 KBS 개그 전성기에 그가 배후에선 미친 영향은 실로 지대합니다.
코메디 시장이라는 코메디 극단을 운영하기도 하였는데 여기서 발굴된 희극인들이 박휘순 신봉선 안상태 김대범 황현희 김민경 등으로 이 멤버들을 선착순으로 뽑아서 키웠습니다고 합니다. "오디션을 봐서 뽑으면 어차피 될 놈을 뽑는거지 내가 키우는게 아니지 않느냐?" 라고.
시카고에선 살다가 대한민국에 놀러와서 인사동에선 운영하던 자신의 가게에 손님으로 왔던 한채영을 알아보고 [전화번호를 받아] 첫작품시킨 인물이기도 합니다.
또한 가수 김현식을 알아보고 가수로 나가길 권유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전유성은 김현식 20주기 추모 다큐멘터리에 나와서 1971년 당시를 기억했습니다. 당시 신촌에선 유명한 음악 다방 DJ로 일하던 20대 초반 전유성은 김현식에겐 통기타를 가르쳐준 사촌형 양국정과 알던 사이였는데 당시 양국정이 사촌아우라고 하면서 데려와 다방에선 노래를 부른 13살인 어린 김현식을 보고 전유성이 기겁했습니다. 전유성은 "너는 음악다방 같은 곳에선 노래부를 재능이 아니야 정말 가수로 나가면 대박일거다!"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했습니다.
이수만은 SM엔터테인먼트 회사[소속사] 아이돌 중 예능에 뜻이 있는 사람은 전유성에겐 보내서 개그 특훈을 시킨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희철 이특 신동이 있습니다.
그 실력은 지금도 건재합니다. 실제로 KBS의 간판 개그프로그램 개그 콘서트를 고안해 낸 사람. 대학로에선 간간히 이루어지던 소극장 개그를 방영으로 끌고 들어온 장자신으로 지금의 방영3사 공개 코메디 프로그램의 창시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개그콘서트에선은 초창기 멤버로 많은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전에 SBS "좋은 친구들"이란 쇼 프로그램에선 "전유성을 웃겨라"라는 코너를 맡았었는데[일반 시민들이 참가해 개관심이나 개그를 선보이며 전유성을 웃기는데 성공하면 경품을 받는 코너] 어지간해선 결코 웃지 않는 초강 내공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을 감탄하게 했었던 적도 있으나 자신 말에 의하면 원래 잘 웃지 않는 성격이 아니라 코너의 성격상 신선한 개그가 아니면 일부러 웃음을 참았습니다고 합니다. 전유성을 웃겨라에선 우승했던 갈갈이 박준형도 여기서 처음으로 나왔습니다.
사실을 집고넘어가면 이 코너는 전유성이 밤무대 공연시 주로 했던 레퍼토리였습니다. 이 때는 그를 웃기면 상금으로 5만원을 주게 되어 있었는데 그 5만원이 당시 그의 밤무대 참석료와 같은 금액이라 상금을 주는 경우가 생기면 자기 참석료를 받을 수가 없게 되기 때문에 생계 개그 억지로라도 웃음을 참아야만 했던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이때도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습니다. 후에 엘리베이터 같은 한데서 빵터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고.
김학래에 의하면 밤무대에 전유성이 참석했을 때 뒷 참석자가 안 와서 시간을 끌어야 했었는데 워낙 애드립이 생각이 안 나다 보니까 "저...계속해서 제 옆모습을 보시겠습니다"라고 하다가 계속 안 오자 "이번에는 제 뒷모습입니다."라고 했습니다고 합니다.
군기와는 담을 쌓은 개그맨으로도 유명합니다. 그가 한창 활동하던 시절 개그계의 똥군기가 심했던 것을 생각하면 특별한 케이스인 셈인데요
특별히 개그맨이란 용어를 밀면서 원로 코메디언들에겐 미운털이 박혀 대기실에 못 들어간 적도 있습니다고. 하지만 자신은 "폭력은 딱 내 선에선 끝내고 대물림은 하지말자"는 생각에 후배들을 괴롭히진 않았습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개그맨 후배들이 많이 따르는 듯 합니다.
취미가 독서라고 하는데 독서를 즐기는 수준을 넘어서 방영이 최고에 다독가로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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